역설의 진리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1절
찬양 | 278장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 1. 마음 문 열기

    “제일 좋아하는 음식과 제일 잘 만드는 음식을 소개해 봅시다.”

  • 2. 함께 찬양을 부른 후에, 순서 맡은 이가 대표기도를 합니다.
  • 3. 본문 말씀을 다 함께 읽고 말씀을 나눕니다.

메시지

성경은 역설로 가득한 책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게 되고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게 됩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게 되고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집니다. 성경의 진리는 역설적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스라엘의 왕이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왕이 들어오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왕의 행차와는 거리가 멉니다. 말이나 병거를 타고 장엄한 기세로 모든 사람을 압도하며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첫째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나귀새끼 위에 예수님은 타셨습니다. 나귀새끼는 뒤뚱거리면서 걸어갑니다. 나귀의 걸음은 볼품없어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은 초라하고도 보잘 것 없는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군중들이 기대한 모습이 아닙니다. 군중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하늘의 군대와 더불어 백마를 타고 등장하는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물론 환호성은 있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들은 ‘호산나’라고 부르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듭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호산나’라고 부르던 그 입술이 나중에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열렬히 외치게 될 것을 예수님은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도성에 이르자 울기 시작한 것으로 보도합니다. 누가복음은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왕으로 맞이하는 환호성의 찬양소리를 들으시면서 울고 계십니다. 왜 우셨을까요? 그 다음 절에 예수님이 우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 19:42)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간의 평화를 이루고, 사람과 사람 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평화에 대해 알았더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들 눈에는 숨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들 눈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셨습니다.

둘째로, 만물의 주인께서 종이 되어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는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9)

예수님은 이를 직접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은 저녁을 드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습니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는 것은 종의 차림새입니다. 예수님은 허리를 굽히시고 제자들 발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만찬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인 예수님이 매우 기이한 행동을 하십니다.

당시에 발을 씻기는 것은 매우 천한 일이어서 종이라 할지라도 유대인인 경우엔 주인도 그런 봉사를 요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대화의 주제는 누가 제일 높으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에도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높으냐를 놓고 입씨름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난데없이 무릎을 꿇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발을 씻깁니다. 랍비요, 선생이요, 주님이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성자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셨습니다. 경배를 받고 섬김을 받는 자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종이 되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죄인 된 인간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셋째로, 심판자께서 심판받는 자로 오셨습니다.

골고다는 죽음을 뜻하는 언덕입니다. 심판자인 하나님은 죽음 한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심판받는 자가 되십니다.

심판자가 어떻게 심판받는 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죽음 한가운데 들어올 수 있습니까?

찰스 웨슬리는 불멸이 죽으셨다고 찬송했습니다. 가시와 면류관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시로는 면류관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쓰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36절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베드로가 이 설교를 한 시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지 겨우 50일 지났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는지, 분명히 보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은전 30냥에 주님을 팔았고, 가야바가 고소했고, 빌라도가 재판했고, 로마 군인들이 긴 못으로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질하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것을 다 보았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 사건이 누구로 인해 일어났는지, 원인과 과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바로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합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마음이 찔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 사건을 나와 무관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바로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죄 값을 위해서 본래 내가 죽어야 할 사람인데, 나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나의 죄가 예수님을 죽게 했습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말에 마음이 찔려서 내가 어찌할꼬? 하면서 내 가슴을 치며 죄를 자복하며 회개할 때, 십자가 사건은 나를 위한 구원이 됩니다. 십자가 은혜가 값진 은혜가 될 것입니다.

나눔질문

  1.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섬김이 나의 삶의 어떤 영역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3.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였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 4. 개인과 교회의 기도 제목을 놓고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1) 모든 성도들이 나를 향한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고 회개에 힘쓰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결단할 수 있도록

    2) 병상에 있는 환우들과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여 새로운 소망을 얻게 하시고 강건해질 수 있도록

    3) 담임목사님과 지역장, 속장님들에게 지혜와 능력이 임하도록

  • 5. 찬송가 151장을 함께 부르시면서 헌금하시겠습니다. 헌금기도를 드립니다.

  • 6. 주님의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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