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시121:1-2)

[선물]

• 하늘을 보면, 그때 이제 생후1개월의 내 아이가 어쩌면 죽을 수도, 아니면 장애가 될 수도 정말 운이 좋으면 회복될 것 이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는 말을 듣고 어디도 눈을 둘데가 없어 보았던 하늘과 산, 그 곳에 도움이란 단어 하나….

• 은행잎이 수북히 쌓이면, 갓 4살 된 아이를 업고, 걸리면서 조기치료 만이 살길인줄 알아 여기 저기 치료기관을 돌아다니다, 돌아오는 아파트단지 길엔 애가 닳아 바스라질 것 같은 내 가슴처럼 은행잎은 이리도 노란색이었던가…

• 나뭇잎이 다 떨어져 길 위를 굴러다니면, 운전대를 잡았던 손에 힘이 더해지며 눈물로 앞이 안 보여도 닦지말자 모진 마음먹었던 일도…

• 흰 눈이 오면, 내 머리로 선택했던 초등학교 6년을 보내기 위해 이사를 2번하고 등하교를 시키면서, 한 학년이 20명인데 6년을 함께 지냈는데 잘 지내겠지 믿었던 학교에서 학년이 올라가며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급기야 아이 목에 선명했던 줄넘기자국…

난 아이의 졸업식에 폐렴이 걸려 영광스런(?) 졸업식을 보지도 못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시니라” (창1:28)

[때때로]

주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되 주님의 형상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고,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며 생육하며 번성하라 시기까지 사랑하시고,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건만 왜 제 아들에게 만은 자신은 보호 할 최소한의 것도 주시지 않았는지, 새도 날개가 있고 고슴도치도 날카로운 털이 있고 미물일지라도 보호색이 있어 자신을 지키고 생명을 이어가건만, 인간에게 허락한 지능을 허락치 않으신 이 아들은 왜 멸시와 조롱을 받도록 하시고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허락치 않으셨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일에 즐거워하는 것 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 (전3:22)

2013년1월29일-2월5일은 평창에서 동계스페셜올림픽이 열린 날입니다. 스페셜올림픽은 올림픽(하계, 동계), 패럴림픽과 함께 세계3대 올림픽 중 하나입니다. 페럴림픽이 신체와 감각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면, 스페셜올림픽은 고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누이 동생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Kennedy Shriver) 여사에 의해 1968년부터 시작된 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경기입니다.

이 경기의 목적은 지적장애인의 운동 능력과 사회 적응력을 높이고 장애라는 차별 속에 가려졌던 잠재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승패보다는 도전과 노력에 의미를 두고 등위 외의 모든 참가 선수에겐 리본을 달아주어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9년 미국 아이다호 대회 때 예산지원이 안되어 ‘스페셜 올림픽 코리아’를 새긴 유니폼도 없이 임시방편으로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출전하여 선수들이 스티커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했던, 기술에 있어서는 무역대국이며 선진국이나, 인간에 대한 후진국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경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평창올림픽은 “Together We Can”(함께하는 도전)이란 정신아래 세심한 배려와 준비로 120개국 3,300여명의 선수들이 알파인스키 외 7개 종목에서 기량을 펼치며 동정과 차별로 두 번 쳐다보는 시선(Look twice)이 아닌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단 한번 만 쳐다보는 평범하고 편안한 시선(Look once)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그토록 노심초사하던 아이 종빈이가 쇼트트랙 선수로 출전하여 300m, 500m에서 은메달과 금메달 수상을 하였습니다. 매 경기에서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곱 번 일어나 결승점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관중의 응원과 환희에 결승점을 통과했다고 세리머니를 하다가 다시 스케이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놀라운 기록은 선수뿐 아니라 부모, 선생님, 이웃의 애정과 땀과 눈물과 의지의 증거임을 보여주었고, 시합 경기를 하면서도 천진하고 선한 눈빛과 유쾌함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또 시상식에서는 리본을 받고 어리둥절해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메달을 걸어주는 순수함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이와 함께했던 그 8일간의 경기를 지켜보며 하나님 지으신 동산은 자기 일에 즐거워하며 그의 몫을 다하는 동산임을 보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몫이 비록 다른 이의 눈에 비루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셨음을 알고,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하셨으니 이를 믿지 않았음이 나의 가시였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다만 이 뿐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4)

이 세상에 어느 누가 환난을 당할 때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환난을 당할 때 그 걸음은 한 발짝도 앞을 향할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난은 분명 소망을 이루는 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소망은 권세나 명예나 재물이나 학문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종빈이에게 없는 그 지식이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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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소망은 주신 것으로 감사하며, 하나님과 화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며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임을 종빈이와 함께 한 걸음에서 보았습니다. 그 아들의 순종이 저를 얼마나 기쁘게 하며, 그 아들이 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얼마나 기쁜지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를, 아들의 찬양과 기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제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이 어제는 서울시 교육감의 서울학생상을 받아 보여주며 상 받으니 기분이 좋네하고 활짝 웃습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라 내가 뭇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46:10)

나는 나의 의지로, 나의 생각으로, 나의 상황을 해결하려하고 그 안에서 주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시기를 바랐으나, 주님은 언제나 나의 손이 내려놓아지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가쁜 호흡을 고루고, 분주한 발길을 멈추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쉬게 하고 가만히 기다리기를 원하셨고, 길 가는 너를 보지 말고 네 환경을 보지 말고, 오직 너를 이 땅에 보낸 나를 바라보며 나를 의지하
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할 때 그 분은 얼마나 높으시며, 높임을 받기에 합당하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나의 삶을 돌보셔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도록 하셨고 종빈이 만이 애달아 돌보지 못했던 두 딸도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도록 돌보셨습니다. 뒤돌아보면 세상의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고, 다만 주님의 이끄심 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의 법 아래 있지 아니하며 주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
세상의 자랑 아래 있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소망 아래 있음을 …
하여 나는 내가 포기할 때도 쉬지 않으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더욱 더 주께 가까이 나가기를 원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본 글은 우이 86호에 실린 김진경 권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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