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네 번째 평론집은 『성과 광기의 담론』(서울: 조선문학사, 2004)입니다. 나는 이 책에서 미셸 푸 코의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해체하자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미셸 푸코에 의하면 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금기시한 것은 위정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사회적 안정을 꾀하고자 하였고, 이를 깨트리는 자들이 바로 스캔들을 일으키는 귀족이었습니다. 한 번 스캔들이 일어나면 백성들은 여지없이 위정자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로부터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스캔들 얘기가 사람 들에게 퍼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 여 위정자들은 성을 매춘이나 병과 연계시켜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성과 함께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며, 종족이 보존되는 것도 성에 의해서입니다. 요즈음 인구 문제에 대 해서 국가 이성 권력을 관장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데, 이도 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45년 전부터 이 분야에 대하여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는 어머니가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가풍 운운하며 ‘중매 결혼’이라는 규범을 지켜 달라고 자식들에게 주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막내이고 어머니 말씀에 잘 순종하는 편이라 이 규범을 지지하였고, 나중에 장성하여 결혼도 중매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서서히 연애 바람이 사회에 불던 때인 지라, 형이나 누나들은 이 규범을 잘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한 번은 혼자서 집을 보고 있는데 나의 누나인 H가 남자 친구인 M을 집에 데려왔습니다. 누나는 대문을 들어서더니 대뜸 날더러 번데기를 오원 어치 사오라는 겁니다. 나는 형들의 연애를 익히 보아 왔던 터 라, 내가 심부름을 다녀오는 동안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약간 짐작이 갔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어머니는 H가 남자 친구와 영화 구경을 간다고 하면 나를 딸려 보냈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에 나름대로 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누나에게 남자가 수작을 못하게 하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했 습니다.

그런데 H는 M을 데리고 집 안에 들어서더니, 대뜸 날더러 번데기를 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골목의 끝을 지나서 큰길가에서 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누나가 나 없는 사이에 ‘수상한 일(?)’을 벌일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에게 밀려 왔습니다. 시장 가까운 골목 안의 번데기 장수도 있는데, 그보다 먼 데서 사오라는 누나가 나 없는 사이에 내가 상상하기 싫어할 행동을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땀까지 흘리며 뛰다시피하며 사 왔더니, H는 “으음. 빨리 갔다 왔네. 근데 번데기가 너무 조금이다. 가서 더 달 라고 해라.”며 다시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누나에게 직접 대 놓고 “누나, 이상한 짓하려고 하지?”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있는 힘을 다 하여 쏜살같이 번데기 장수에게 달려갔습니다. “누나가 이거 적다고 더 달래요.” 그랬더니 번데기 장수는 제대로 줬다고 하고 나는 빨리 번데기를 더 받아 ‘누나가 이상한 짓 하려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답답해 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옆에 있던 복덕방 영감이 “거, 얘가 더 달라고 하는데 더 주시지요.” 하는 바람에 번데기 한 숟갈을 더 얻어서 갖다 줬더니, 누나는 그제서야 M과 툇마루에 앉아 해해거렸습 니다. 나는 누나가 왜 심부름 시간을 길게 잡았는지 그 속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누나의 연애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의 형 S도 서울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연애를 잘 한다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형은 만리포 해수욕장에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수영 잘하는 C를 만나 물 속에서 진한 키스를 한 후 결혼에 골인할 정도로 여자에 대해서 자신만만하였습니다. 내가 중 학생이었을 적에 어머니가 서울로 이사를 하는 바람 에 나는 누나들과 작은 소도시에서-전주-에서 자취 를 하고 있었는데, 형이 C를 데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나의 자취방은 미닫이 문을 경계로 해서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형은 건넌방에서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나는 그 기회에 일류 대학에 다니는 형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그런 대학에 가고 싶다는 것을 형에게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밤새도록 수학 공식을 크게 소리내어 외우면서 공부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형은 아침이 되자마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와 함께 곧바로 집을 나 서버렸습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예전에 내가 뭘 잘못하였는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이 ‘낭만이 있는 연애 도사’라는 사실은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형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는 여성 앞에서 아주 자신만만하였습니다. 아마도 내 피에는 형에게 흐르고 있던 유전적 요인이 발동하고 있었나 봅니다.

옛날 풍광 좋은 소읍의 두 칸 자취방에서 아이와 누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척 형이 애인을 데리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각기 잠자리를 청하는데
아이는 형에게 공부 열심히 하는 걸 자랑하려고 수학 공식을 밤새 외웠습니다.
형이 속상해 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 자랑」전문

참,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연애 도사 S가 결혼 후 두 딸을 낳고 가정적으로 사는 걸 보면, 연애 기술은 결혼 전에만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S가 노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도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길 기도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자녀인 저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는 2부 예배 시간에 솔로를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교회 홈페이지에 녹화된 제 모습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파바로티 흉내를 내며 폼을 잡고 아주 잘 부른 줄 알았는데, 녹화된 장면을 보니까 너무 못 불러서 교인들이 억지로 들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나 자신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노래를 못 부르지만, 그 자녀를 사랑하므로 기꺼이 제 찬양을 받아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제 아들을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아버지로서의 내가 보기엔 아들이 어리숙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진정 사랑하므로 그 어리숙한 행동을 감싸안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하나님도 이와 같은 심정이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비록 노래를 못 부르지만,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잘 아시지요. 저, 예배 열심히 드리니까 예쁘지요?” 나의 진심 어린 찬양을 주님이 받아 주심을 감사하며, 더 열심히 찬양할 것을 다짐하여 봅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의 의에 따라 살기로 다짐하면서, 하나님이 부족한 저에게 함께 하여 주실 것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필자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시문학>지를 통해 등단(1983).
국민대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문학평론가협회 사무 국장,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외래 교수 역임.
현재 <교회 연합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중.
제14회 문학평론가협회상(1995), 제4회 이은상 문학 상(2011) 수상.

※본 글은 우이 93호에 실린 정신재 집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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