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가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은(銀)을 구할 것이다
봄내 향긋한 은을 마음의 옷으로 갈아입혀
세상을 감쌀 빛을 얻을 것이고
시대의 상처를 보듬을 도금을 할 것이고
적당한 흙과 공기를 넣은 화분에
꿈꾸는 영혼의 나무를 키울 것이다
거기서 너를 울리는 열매 한 점 얻어
추억의 꽹과리를 울리고 싶은 날이면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
힐링 힐링 하며 그 숲으로 안내할 것이고
너와 개울가에 다정히 앉아 내장의 고민을 씻어 말리고
일상의 권위도 바위에 내려놓을 것이다
시냇물 비켜가는 시(詩)로 맛있는 요리를 할 것이고
너와의 악연(惡緣)을 연기로 날려 보내고
아름다운 시 한 점 맛있게 먹으리
시가 있어 행복한 젖을 짜는 너에게
맛있는 이야기 쌈을 보태리
잘 가라 상큼한 공기가 되어 버린 후각이여
이제는 먼 나라가 되어 버린 도시의 추억이여

주님이 이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리며,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 나는 삼류 콤플렉스에 시달렸었다. ’60년대에는 중학교에도 입학 시험이 있었는데, 나는 그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졌다. 그리하여 전주시에 새로 신설된 J중학교에 세 번째로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당시 어머니는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나는 누나 둘과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녔는데, 키가 크면서도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나의 콤플렉스는 고교 입시 때에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전기와 후기에 떨어져서 나는 재수하여 네 번째 시험으로 겨우 후기 고등학교인 S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재수를 한 덕에 학교에서 비교적 성적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 때문에 시기를 하는 아이가 있어서 너무 교만하지 말라고 협박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험에 늘 떨어졌었다는 강박 관념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70년대 대학 입시에는 대학에 들어갈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 예비고사 제도가 있었는데, 합격자 발표장에 너무 사람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나는 두 줄로 나열되어 있는 합격자에 분명 내 이름이 들어 있었는데도 오른쪽 줄에 있는 내 명단을 보지 못하였다. 떨어진 줄 알고 집에 가서 스무 날 동안 만화책을 실컷 보고 있었더니, 담임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에 예비고사 합격 통지가 와 있는데, 왜 원서를 안 쓰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사흘을 공부해서 전기에 떨어지고 후기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이야 교사 되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당시에는 중동 건설붐이 일어 건축과 다니는 학생들이 인기가 있었고 사범대에 다닌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 내가 나온 학과는 경찰행정학과 다음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아뭏든 젊은 시절 나는 삼류 콤플렉스 때문에 강박 관념에 시달려야 했다. 매사에 자신이 없어 기가 죽어 지내야 했고, 막상 시험 때가 되면 이번에도 보나마나 떨어지겠지 하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여학생을 대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니던 학과는 정원이 27명이었는데, 그 중 삼분의 이인 18명이 여학생이었다. 한편으로는 꽃밭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면서도 나는 감히 여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마음 속으로 좋아하였던 K가 여고 동창생들과 일일 찻집을 연다며 초대 티켓을 내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감지덕지하여 같은 과 친구 네 명을 데리고 충무로 명보 극장 옆에 있는 Y다방으로 갔다. 과연 K는 미인이었던지라 다방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이 흥성하였다. 우리는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우리 과에서 누가 제일 예쁜 여학생인가를 꼽아보았다. 거기서 나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K에 대한 언급은 없고, 내가 평소에 촌스럽다고 여긴 옥희, 조금 어두운 그림자가 풍기는 현이 등 제각각 다른 여학생을 미인이라며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K는?” 하며 되물었더니 친구들은 의외라는 듯 “서구적이긴 한데, 한국 남성들의 기준으로는…” 하며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였던 K가 그런 취급을 당함에 서운한 생각이 들어 며칠째 잠을 못 이루었다. 하루를 앓다가 학교에 갔더니 점심 시간에 교사(校舍) 옆 숲 속 벤치에서 K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얘기하고 있는데, K대 철학과에 다닌다는 남학생 P가 K 옆에 와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갑자기 세 사람 사이가 어정쩡하게 되는 바람에 나는 그들을 분식집으로 데리고 가 짜장면을 사 주는데, 지갑에 든 돈이 딸랑 두 사람 분밖에 안 되어 나는 점심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그대로 앉아 있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랬더니 K가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 동아리 얘기를 하다가 자기 친구들이 다니는 동아리가 있다면서 UBF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1970년대부터 미국과 독일 등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는 UBF(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K는 당시 남자 친구와 약혼을 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고 알았던지 나를 자기 친구들이 다니는 그곳을 소개하여 주고 내빼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의과 계통 학생들의 지도를 받으며, 야곱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7년 동안을 선교사 후보로서 밤낮으로 성경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창세기>를 비롯하여 <출애굽기><마가복음><로마서> 등을 꼼꼼히 읽어 볼 수 있었다. 그때 나에게 다가온 말씀이 <마가복음> 9장 23절에 나오는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는 삼류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나아가 문학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의 콤플렉스를 연구하여 서른 여섯 살에 <김동인 소설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 논문은 김동인의 「광화사」에 나오는 주인공 솔거가 추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미녀상을 그려나가는 과정을 분석 심리학의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었다. 어쩌면 작품 속 솔거는 삼류 콤플렉스 때문에 여성들 앞에서 말도 못 붙이던 내 신세와 비슷하였다. 그래서 이왕 공부한 김에 여성들 앞에서 쑥스러워하는 내 성격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성담론이었고, 그 결과물이 나의 열 번째 평론집 『성과 광기의 담론』(조선문학사, 2004)이었다.

이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성을 연구한 것인데, 나는 이를 통하여 남자는 평생 미적 대상을 추구하고 여자는 남성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자신을 닮은 타자를 상정하여 놓고 예쁘게 꾸며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이 불결하고 병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를 연속적으로 이어주는 몸을 통하여 황홀감을 맛보고 종족을 보존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또한 많은 여성들과 사귀었으면서도 질투나 미움을 전혀 받지 않은 카사노바(유럽에서 실제로 살았던 귀족), 조금씩 조금씩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는 발몽(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에서 여주인공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물), 여성의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차지하여 가는 돈주앙(유럽의 전설과 몰리에르의 희곡에 나오는 인물), 사드(여성을 광기적으로 대하는 인물), 지킬박사와 하이드(낮에는 점잖은 의사이나 밤마다 포악한 인물로 변하는 스티븐슨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등의 인물을 통하여 인간 본성과 욕망을 고찰하게 되었다. 이들 인물을 연구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비경을 터득하였던지, 나는 S디지털대학에서 재미 있는 성담론을 강의할 수 있었다. 특히 노래방에서는 뭇여인의 심금을 사로잡을 만큼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나를 가만두지 않으셨다. 강의는 잘 하였으나 교수 임용에는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3개월간 애써 기른 콧수염을 끝내 깎을 수 없어 면접장에 갔다가 재단 이사장에게 밉게 보여 고배를 마셨고, 출신 대학에서는 내가 전공한 성담론이 학생들에게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하여 채용하지 않았다. 더구나 마광수 교수 등이 법정 소송에 휘말려 성담론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내가 전공한 성담론이 제대로 피력되지 못함에 스트레스가 심하여 회식 때마다 폭식을 하였고, 직장 동료들은 내 옆에 앉으면 먹을 것이 없다 하여 앉지 않을 정도였다. 급기야 비만으로 인한 통풍과 고혈압이 찾아왔고, 만성 신부전증 3기라는 진단이 내려져 명퇴를 신청하였다.

그리고 우이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나는 지난날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진정성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문학 작품에 나타난 적그리스도 세력을 비판하면서 문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나에게 신앙심을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병마도 치유시켜 주셨다. 그래서 힐링(치유)을 주제로 하여 쓴 작품이 바로 졸시 「시골에 가면」(<한국 크리스천 문학> 56호, 2013 봄)이다. 나의 콤플렉스를 치유시켜 주신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탄생한 작품이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좋은 영감을 주시리라 확신한다. 할렐루야.

※본 글은 우이 90호에 실린 문학평론가 정신재 집사의 글입니다.

카테고리 최신 글

燾垣(도원)아 燾垣(도원)아 한 겨울 긴 침묵 헤치고 사임당 같은 엄마와 율곡 같은 아빠의 품에서 도원이가 돋아난다. 따사로운 봄기운 속에 도원이 곤지곤지 간지러워 새순들은 돋아나고 도원이 빠이빠이에 온 세상이 일렁이며 우리모두 아지랑이 된다. ...